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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8 days ago
[김재성의 느낌있는성서읽기] 빵은 빵집에서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군중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자, 제자들은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일 빵을 살 돈이 어디 있느냐고 한다. 제자들의 이런 관점은 현대인들의 생각과도 비슷하다. 그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일단 예산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자원은 늘 외부적인 것, 또는 쓰면 소모되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에게, “너희에게 빵이 얼마나 있느냐? 가서, 알아보아라”라고 말한다. 바로 앞에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한 것같이, 여기서도 “너희에게” 빵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한다. 즉 예수가 주려고 하는 양식은 외부적인 어떤 양식이 아니라 우리가 갖고 있는 양식 또는 우리 안에 있는 어떤 양식이다. 제자들은 외부적인 자원을 생각하지만 예수는 내적인 자원을 보고 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은 남자 어른만도 오천 명이나 되었다. 그 음식은 오천 명은커녕 다섯 명분도 안 되는 적은 분량이다. 그것으로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먹을 수 있다는 말인가? 도대체 빵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인가? 사람들은 흔히 이 기적 이야기에서 어떻게 음식이 불어났는가에만 관심을 집중한다. 전통적 입장에서는 예수님이니까 그런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이른바 합리주의적 해석은 다들 자기가 먹을 음식을 지니고 있었지만 누구도 선뜻 내놓지 않았는데, 한 사람이 내 놓으니까 너도 나도 내놓아서 그렇게 먹고도 남은 것이라고 상상하기도 한다. 파울루스(H.E.G. Paulus)가 이런 해석의 대표자이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다 본래의 기적 이야기의 초점에서 벗어난 것들이다. 성서는 어떻게 빵이 불어났는지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미 마가 기자에게서도, 초대교회에서도, 이 기적 이야기의 초점은 빵이 마법처럼 불어난 것에 있지 않았다. 이 이야기의 초점은, 예수께서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를, 남처럼 여기지 않고 자기 식구처럼 감싸 안으며, 작은 그룹들로 나누고, 푸른 풀밭에 앉게 한 것과, 외부적 자원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자기들 안에 있는 자원으로 그들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았다는 사실에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 속에서 나를 보는 공감과 동일시의 기적이요, 무한한 자원과 가능성을 나와 우리 안에서 발견하는 주체성의 기적이다.
적은 음식과 그것을 먹은 많은 사람들 사이의 대조 또한 이 이야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다. 그 음식 자체로는 그 많은 사람을 먹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이 외부적인 물질적 양식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나눔의 양식이 되었을 때 그것은 그 많은 사람들이 먹고도 남았다. 이것은 마치 마중물과도 같다. 마중물은, 펌프로 땅 속의 물을 퍼 올릴 때, 먼저 펌프에 붓는 한 바가지 정도의 물이다. 땅 속에는 물이 무진장하게 있지만 그 한 바가지 물이 없으면 그것을 퍼 올릴 수가 없다. 예수는 우리 속에 지하수처럼 무궁무진하게 있는 자원을 이미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한 바가지의 물이 없어서 퍼올리지 못하고 사장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예수의 손에 들린 하늘의 빵, 그리고 그것을 떼는 나눔의 사건은 이런 우리의 내적 자원을 퍼올리는 마중물과도 같다. 요한 기자가 생수에 관한 은유를 사용할 때도 이런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에 이른 것과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처럼 흘러나올 것이다”(요 7:37-38).(이상은 졸고 <예수의 기적>(한신대출판부, 2010) 382-384을 간추린 것이다.)
김병화 님의 그림에서 눈여겨 볼 것은 물고기가 하늘에서 기적적으로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병이어 기적 이야기의 모델이 된 것으로 보이는 만나의 기적은 만나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 수많은 물고기들은 예수의 손에 잡힌 두 마리 물고기로부터 나온 것들이다. 그리고 그 두 마리도 예수가 준 것이 아니라 군중들 속에서 나온 것이다. 즉 예수는 외부에서 빵을 가져와서 자선을 베푼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가능성으로 있는 것들을 꺼내어서 현실이 되게 하였다.
최근에 풍력발전에 대한 기사를 보았는데, 우리 주위의 바람 속에 있는 에너지를 전기로 바꾸기만 하면 화석 연료를 쓰지 않고도 우리가 쓰기에 충분한 전기를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탈리아에서는 거대한 연을 띄워서 그것이 당기는 힘으로 전기를 일으키는 방법도 이미 사용하고 있었다. 이것은 꼭 전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위한 하나의 은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자원은 제한된 것이며, 앞으로 몇 년 내에 화석연료가 바닥이 나면 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바람과 같은 자원은 어디에나 있다.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또 다른 자원이라면 그건 바로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예수는 우리 안에 있는 자원을 볼 수 있고,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그 자원을 현실로 끌어낼 수 있는 영감과 실천력을 가진 분이다. 미운 오리 새끼는 자기 안에 있는 백조라는 자원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하늘을 나는 백조를 부러워만 했다. 바로 그런 존재에게 “넌 오리가 아니라 백조야”라고 말해주고 “너는 하늘을 날 수 있어”라고 말해준 분이 바로 예수이다.
<느낌있는성서읽기> 지난호는 http://www.mindlle.com/spboard/board.cgi?id=mindlle 에서 볼 수 있습니다.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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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seong 1437 days ago
그림설명: 김병화 작 "이어의 기적"
kimjseong 1438 days ago
미운오리새끼는 자기 안에 있는 백조라는 자원을 알지 못하고 하늘을 나는 백조를 부러워 했다. 그에게 넌 오리가 아니라 백조야, 너는 하늘을 날 수 있어 라고 말해준 분이 바로 예수이다.